송골매 – 세상만사 (1981) Song Gol Mae (Falcon) – Sesangmansa (Everything in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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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골매 – 세상만사 (1981)

송골매는 1979년 항공대학교 밴드 ‘활주로’ 출신의 배철수와 홍익대학교 밴드 ‘블랙 테트라’의 구창모를 중심으로 활동한 밴드이다. 1975년 대마초 사건으로 한국 대중음악계 거인들이 사라지며 생긴 공백을 대학생들이 메우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1991년 해체되기 까지 아홉 장의 정규 앨범을 남겼으며, ‘어쩌다 마주친 그대’ ‘세상만사’와 같은 많은 명곡을 남겼다. 젊고 활기 넘치는 이미지와 대중적인 감각, 탄탄한 연주력을 바탕으로 수많은 방송활동과 클럽 공연을 병행하며 당대 최고의 인기 록 밴드로 올라섰다. 그러나 배철수가 훗날 ‘소모적인 일을 너무나 많이 해야 했다’고 회고할 정도로 강행군이 심해 피로가 누적되었고 그밖에 여러 가지 사정으로 결국 구창모가 탈퇴, 전성기의 힘을 잃게 된다. 배철수는 이후 DJ로 활동하며 국내 유일의 팝 전문 라디오 방송을 20여 년째 진행해오고 있다.

‘세상만사’는 송골매 1집에서 처음 발표된 곡이다. 인상적인 기타 리프와 오르간의 전개에서 그들이 자주 연주했던 딥 퍼플의 영향을 엿볼 수 있는 정통 하드록이다. 그러나 멜로디 라인과 그 정서는 보다 독자적이며, 한국에서 록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녹아있다. 배철수가 보컬을 맡았는데, 젊은 나이에 만든 곡답지 않게 달관한 듯한 가사는 배철수의 그 유명한 목소리를 만나 제자리를 찾는다.

 


펄 시스터즈 – 커피 한 잔 (1968) Pearl Sisters – A Cup of Coff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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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 시스터즈 – 커피 한 잔 (1968)

펄 시스터즈는 1968년에 데뷔한 배인숙 · 배인순 자매 듀오이다. 데뷔 앨범 <님아 / 커피 한 잔>은 신중현의 작품이었다. 그 시대 대중음악의 주류였던 트로트의 그늘에서 확실하게 벗어난 신중현의 음악을 늘씬한 몸매의 자매가 안무와 함께 선보인 무대는 당시로서 획기적으로 색달랐다. 이 앨범의 기록적인 흥행으로 펄 시스터즈는 이듬해 데뷔 1년차의 신인으로서 가수왕의 자리에 올랐다. 펄 시스터즈 앨범 제작을 끝으로 베트남 미군기지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었던 신중현은 급작스레 베트남 행을 취소했다. 이들의 성공은 훗날 소위 말하는 신중현 <사단>의 발판이 되었다. 이후 소속사를 옮긴 펄 시스터즈는 일본에도 진출하고 미국의 콜럼비아 레코드와도 계약하는 등 인기 가도를 달렸으나, 신중현과 함께 한 데뷔 앨범만큼의 성과는 거두지 못하였다. 76년 언니 배인순의 결혼으로 펄 시스터즈는 막을 내렸다.

‘커피 한 잔’은 이후 수많은 음악가들에 의해 다시 불리어진 인기 있는 곡이다. 원래 신중현과 Add4가 1964년 발매한 앨범에 <내 속을 태우는 구려>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던 곡으로, 68년 펄 시스터즈의 보컬과 함께 새로 발표되었다. 본디 사이키델릭한 신중현의 기타로 전진하는 묵직한 곡이나, 젊은 세대에게는 아마도 같은 이름의 아이스크림 CF에 사용된 디스코 풍의 편곡에 익숙할 것이다. 커피를 매개로 연인을 기다리는 마음을 표현한 가사가 재치있다.

 


신촌 블루스 – 아쉬움 (1988) Shinchon Blues – Aching heart

신촌 블루스 – 아쉬움 (1988)

신촌 블루스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1986년 서대문구 신촌동의 한 클럽에서 시작된 블루스 그룹이다. 엄인호와 이정선이라는 걸출한 기타리스트들을 중심으로, 한영애와 김현식 등 개성있는 보컬리스트들과 함께 블루스를 기반으로 한 음악을 해 왔다. 결성 초기에는 각자의 색을 지닌 음악가들이 모여 자유롭게 블루스를 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이들이 함께한 공연이 점점 높은 인기를 얻게 되자 88년 정식으로 앨범을 발매하고 활동하게 된다. 신촌블루스의 음악은 정통 블루스에 한국 대중가요를 접목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2집까지 함께한 이정선이 탈퇴하고 현재까지 엄인호를 주축으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아쉬움’은 1988년에 발표된 1집 신촌블루스에 수록된 곡이다. 엄인호와 정서용이 보컬을 맡았는데, 소박하고 애틋한 가사와 영롱한 건반의 음색이 두 사람의 상반되는 보컬과 어울려 느긋하면서도 긴장감 있는 분위기를 이룬다. Ozzy Osbourne의 ‘Goodbye To Romance’가 연상되는 기타 솔로와 중간의 색소폰 솔로 또한 매우 인상적이다.


들국화 – 그것만이 내 세상 (1985) Deul Guk Hwa (wild chrysanthemum) – Only That is My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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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국화 – 그것만이 내 세상 (1985)

들국화는 군사정권 시절, 소위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던 네 명의 포크 음악가가 모여 결성한 록 밴드이다. 이들이 1985년 발표한 앨범 ‘들국화’는 우리 음악사에 전설로 남았다. 완성도 높은 스튜디오 앨범의 탄생으로도, 80년대 한국의 시대정신이 반영된 것으로도 읽히는 이 앨범은 음악적으로, 음악 외적으로 80년대의 분수령이었다고 할 만 하다. 들국화의 음악에는 거친 오버드라이브나 난폭한 드럼이 없지만, 드라마틱한 곡 구성과 간결하지만 힘 있는 가사로 그 무엇보다 강렬한 감정을 전달한다.

들국화는 앨범 발표 이후로도 여러 차례 콘서트를 이어가며 활동하였지만 앨범의 성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이후 네 사람의 견해 차이 등으로 사실상 해체의 수순을 밟은 들국화는 오랜 공백을 깨고 2012년, 재결성을 발표하고 활동을 재개한다.

‘그것만이 내 세상’은 ‘행진’과 함께 가장 널리 알려진 들국화의 곡으로, 밴드의 음악적인 핵심이었던 최성원이 작사 작곡하였다. 점층적인 구성과 드라마틱한 코드 진행, 그리고 아름다운 기타솔로까지 거의 모든 면이 돋보이면서도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압권인 것은 가사를 관통하는 정서와 그 전달이다. 전인권의 목소리는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이 가사의 정서를 완벽하게 담아내고 있다.


서울훼미리 – 이제는 (1987)Seoul Family – For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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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훼미리 – 이제는 (1987)

서울훼미리는 80년대 중반 미8군 무대 출신 위일청이 결성한 팝 밴드이다. 위일청은 김승미와 듀엣으로 보컬을 맡았다. 위일청의 허스키하면서도 박력있는 목소리와 김승미의 차가운 목소리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고 나이트클럽을 중심으로 많은 인기를 모았다. 이후 1990년이 되어 위일청이 탈퇴하고 김승미는 새로운 보컬 유노와 함께 혼성 2인조로 서울패밀리 활동을 이어나갔다.

‘이제는’은 저메인 잭슨(Jermaine Jackson)이 피아 자도라(Pia Zadora)와 함께 불렀던 ‘When The Rain Begins To Fall’을 번안한 곡이다. 빠른 박자에 실려 거의 효과음처럼 느껴지는 베이스, SF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불안한 신스 리프가 인상적이며 (실제로 원곡은 SF 영화 삽입곡이었다) 보컬 멜로디와 음색을 듣자마자 파워 숄더나 롤러스케이트가 떠오르는 전형적인 80년대 풍의 뉴웨이브 신스 팝이다. 거의 비슷한 구성으로 연주되지만 위일청과 김승미의 보컬이 확연히 다른 개성을 갖고 있어 비교하며 듣는 재미가 있다.


이상은 – 담다디 (1988) Lee, Sang Eun – Dam Da 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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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 담다디 (1988)

올해 데뷔 25년차인 이상은은 현재까지 열 네장 이상의 앨범을 발매한 음악가이다. 그녀는 확고한 자신의 예술세계를 가지고 국악, 재즈, 로파이 등 장르와 문화를 가로지르는 도전적인 실험을 꾸준히 이어가면서 ‘공무도하가,’ ‘외롭고 웃긴 가게’와 같은 걸작 앨범을 만들어 냈다. 음악 이외에 그녀는 미술을 공부한 바 있고 책도 냈으며 라디오 DJ로도 활동한다.

이상은을 말하는 데 이 정도의 서술로는 모자라다. 하지만 더 이상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상은이 누구인가요?” 하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25년간 그녀가 끊임없이 추구해 온 변화의 스펙트럼은 우리 음악사에 거의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의 행보에는 전형적일 정도로 명쾌한 픽션 같은 면이 있어서, 어떤 식으로든 요약하는 것은 동어반복으로 느껴질 정도이다.

이 모든 것의 시작에는 ‘담다디’가 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는 이런 때 쓰는 표현일 것이다. 혹시나 이 글을 읽을 외국의 독자들을 위해 간단한 비유를 소개하자면, 라디오헤드가 ‘Creep’ 이후 왜 21세기의 핑크 플로이드가 되어가는 가를 떠올리면 비슷하다. 그렇지만 ‘Creep’ 보다는 좀 더 밝고 명랑한 곡이다. 늘씬한 키의 이상은이 엄청나게 큰 옷을 입고 팔다리를 내저으며 노래를 부른다. 훗날 ‘리체(Lee tzsche)’라고 불리게 될 그녀의 시작은 이토록 발랄하였다.

 


이정화 – 싫어 Lee, Jung-Hwa – I don’t like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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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화 – 싫어 (1969)

‘싫어’는 신중현 음악 세계의 또 다른 단면이다. 이 곡이 실린 앨범은 전면에 보컬 이정화의 이름을 내세웠으면서도 ‘신중현 작곡집’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연주는 신중현과 그가 당시 결성한 밴드 덩키스(Donkeys)의 작품이다. 이 무렵 신중현은 왕성하게 여러 가수들의 음반 제작에 참여했는데, 이정화와 덩키스가 함께한 음악은 소울과 사이키델릭이 절묘하게 만나 40년이 넘게 지난 지금 들어도 신선함을 잃지 않는다.

‘싫어’는 이정화의 보컬과 신중현의 기타가 전면에 나서기 보다는, 오르간과 현악 편성을 앞으로 배치하여 풍성한 느낌을 준다. 배킹 코러스와 이어지는 스트링의 멜로디가 특히 인상적인데, 보다 델포닉스의 소울에 가깝게 느껴진다. 델포닉스의 곡들이 그랬듯이, 우리 시대 디제이의 손을 거쳐 새롭게 태어난다면 어떨까 궁금해지는 곡이다.


히식스 – 모르겠오이다 He6 – I don’t 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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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식스 – 모르겠오이다 (1972)

히식스(HE 6)는 키보이스 출신의 기타리스트 김홍탁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그룹이다. 이들은 동시대 서구의 음악을 번안하여 발표하고, 이렇게 터득한 방법론으로 한국의 락은 어떤 모습일지를 먼저 그려본 그룹이었다. 이들은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다. 1972년 남자다운 목소리의 최헌이 가세한 당시, 히식스의 인기는 정말로 대단했고, 한국 록의 부흥기를 이끌었다는 평을 후대로부터 받고 있다.

인기 정상을 달리는 여러분의 히식스

지금 같으면 아무도 저런 촌스러운 문구를 앨범 커버에 적어놓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 히식스는 그렇게 했다. 아무래도 그때는 지금보다솔직 담백했던 시대였던 것 같다. ‘모르겠오이다’는 그런 솔직 담백한 가사를 단단한 연주에 실은 곡이다. 힘차게 곡을 여는 브라스 연주에는 묘한 긴장이 느껴지는데, 이후 오르간과 베이스가 이끌어가는 편곡이 견고하면서 코러스와 기타 솔로가 엮여 뻔하지 않은 긴장을 이어간다.


샌드페블즈 – 나 어떡해 Sand Pebbles – What should I do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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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페블즈 – 나 어떡해 (1977)

샌드페블즈는 서울대학교 교내 학생들이 결성한 밴드로, 현재까지도 30년 이상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유서 깊은 동아리이다. 후세에 <나 어떡해>로 기억되는 ‘그룹사운드 샌드 페블즈’는 6기이며 그 중에 전업 뮤지션으로 활동한 사람은 없다.

<나 어떡해>는 산울림의 베이시스트이자 샌드페블즈 5기였던 김창훈이 작사/작곡한 곡이다. 샌드페블즈는 이 곡으로 77년도 대학가요제 대상을 수상하여 전국적으로 유명해지게 되었다. 60년대의 곡들인 ‘California Dreamin’’이나 ‘Happy Together’를 떠올리게 하는 건조하면서도 애상적인 분위기의 기타와 코러스 하모니가 인상적이다. 할 말만하는 가사는 단순하면서도 점층적인 멜로디에 실려 힘을 얻고, 날카로운 기타 솔로로 이어지지만 곡은 결코 감상적인 쪽으로 치우지지 않는다.

김창훈의 곡인만큼 산울림 앨범에도 실린 바 있다. 산울림의 ‘나 어떡해’는 좀 더 빠른 템포에 오르간 사운드가 좀 더 부각되도록 편곡되었다.

 


송창식 – 가나다라 Song Chang-Sik – Ganadara (1980)

송창식 – 가나다라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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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안 ‘세시봉 친구들’ 열풍이 불었다고는 하나, 대부분의 요즘 젊은이들에게 송창식은 낯설다. 어린 친구들에게 송창식은 갑자기 나타난 구시대의 기인쯤 될 것이며, 그나마 TV를 좀 열심히 본 부류나 <열린 음악회>에서 본 그 얼굴을 – 나이가 들어도 별로 달라질 것 없는 – 기억할 것이다. 70년대 그가 불렀던 “왜 불러” “고래사냥” 같은 노래가 한때 이 땅의 젊음을 대변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조금은 슬픈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젊은이들은 그를 잊어버리겠지만, 여기 절대 변하지 않을 사실이 있다. 그는 이미 한국 대중음악사의 만신전에 오른 불세출의 천재이며, 음악으로 사색하여 철학을 이룬 현인이고, 무엇보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연습을 일과로 살아가는 현재 진행형의 가수라는 것이다.

‘가나다라’는 1980년에 발표된 곡으로, 한국어가 서툰 재일교포들을 위해 썼다고 그가 밝힌 곡이다. 리듬, 멜로디, 편곡 모두가 단조로운 듯 하지만서도 변화무쌍하다. 가나다라, 일이삼사, 태정태세 등 얼핏 천진하게 읽히는 가사는 거침없이 달리는 리듬에 실렸다가 이내 한 편의 시조와도 같은 정서를 품는다. 이 모든 것을 가로 지르는 송창식의 목소리는 내내 절묘하게 완급을 조절하면서도 결코 그 힘을 잃지 않는다.

사실 이 노래로 한국어를 익히기란 쉽지 않다. 이 노래는 가나다라를 넘어선 한국적인 것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가나다라 (1980)